Page 136 고등학교 컴퓨터 그래픽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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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주어진 첨성대 관련 본문을 복사하 [첨성대]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에 있는 신라시대 천문을 관측하던 건물. 높
여 첨성대 이미지와 겹쳐 놓는다. 본 이 약 9.5m. 국보 제31호. 일월행성의 운행을 관측하여 역법을 만들
고, 천문 현상을 관찰하여 국가의 길흉을 점치는 점성을 하는 데에 사
용되었으리라 짐작된다.
문을 선택한 후 [Character Style]의
첨성대 꼭대기에 짜여 있는 정자석(井字石) 위에 관측기구를 놓았던
[관광지 내용] 탭을 선택해 서체를 것으로 보인다. 혼천의(渾天儀) 같은 관측기구를 정상에 설치해 별을
관찰하여 춘분 ·추분 ·동지 ·하지 등의 24절기를 측정하고, 정자
석을 동서남북 방위를 가리키는 기준으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삼
적용한다. 국유사(三國遺事)》에는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 재위 632~647) 때
건립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를 토대로 하면 첨성대란 한자 그대로 ‘첨성(瞻星)하는 대(
臺)’라는 의미이며, ‘별[星]을 바라보는[瞻] 시설[臺]’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한편에서 첨성대가 제단이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삼국유사》에
따르면 첨성대는 천문 관측대였음이 틀림없다.
첨성대는 건립 당시 천문학 부문을 지배하던 ‘천원지방(天圓地方)’ 설
에 따라 몸체를 둥글게 만들고 기초에는 네모난 기단석을 놓았다. 기
단석 위에 돌을 한 단 한 단씩 총 28개 단을 쌓아 천체의 별자리 28수
를 나타내었다. 몸체는 27단이나 맨 위의 정자석을 합치면 28단이고
기단석을 합치면 29단이며, 기단석과 정자석을 제외한 원주부(圓柱
部)에 사용된 석재 수(石材數)는 하층부터 27단까지 362매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궁(正宮)으로 사적 제
117호. 도성의 북쪽에 있다고 하여 북궐(北闕)이라고도 불리었다. 조
선 태조 4년(1395)에 건립되어 초기에 정궁으로 이용되었으나 임진
왜란 때 소실되었다.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조선 말기 고종 때
중건되어 잠시 궁궐로 이용되었다.
06 본문 내용과 이미지가 겹치지 않도 [첨성대]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에 있는 신라시대 천문을 관측하던 건물. 높
록 이미지를 선택한 후 [Window]- 이 약 9.5m. 국보 제31호. 일월행성의 운행을 관측하여 역법을 만들
고, 천문 현상을 관찰하여 국가의 길흉을 점치는 점성을 하는 데에 사
용되었으리라 짐작된다.
[텍스트 감싸기(Text Wrap)] 팔레트
첨성대 꼭대기에 짜여 있는 정자석(井字石) 위에 관측기구를 놓았던
를 클릭해 [개체 모양 감싸기(Wrap 것으로 보인다. 혼천의(渾天儀) 같은 관측기구를 정상에 설치
해 별을 관찰하여 춘분 ·추분 ·동지 ·하지 등의
24절기를 측정하고, 정자석을 동서남북 방위를 가
Around Object Shape)] 아이콘을 리키는 기준으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
사(三國遺事)》에는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 재위
선택한다. 632~647) 때 건립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를 토대로 하면 첨성대란 한자 그대로 ‘첨
성(瞻星)하는 대(臺)’라는 의미이며, ‘별[星]을 바라보
Tip 는[瞻] 시설[臺]’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한편에서
첨성대가 제단이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삼국유사》
Wrap Options을 [Left side]로 설정 에 따르면 첨성대는 천문 관측대였음이 틀림없다.
한다. [Contour Options]은 윤곽선 첨성대는 건립 당시 천문학 부문을 지배하던 ‘천원
옵션으로서, 가장자리를 감지하기 지방(天圓地方)’ 설에 따라 몸체를 둥글게 만들고
기초에는 네모난 기단석을 놓았다. 기단석 위에
위해 [Detect Edges]를 선택한다. 돌을 한 단 한 단씩 총 28개 단을 쌓아 천체의
텍스트와 이미지 간에 거리를 두기 별자리 28수를 나타내었다. 몸체는 27단이나
맨 위의 정자석을 합치면 28단이고 기단석을
위해 [Top Offset]을 2mm로 설정
합치면 29단이며, 기단석과 정자석을 제외한
한다. 원주부(圓柱部)에 사용된 석재 수(石材數)는
하층부터 27단까지 362매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조선시
대의 정궁(正宮)으로 사적 제117
호. 도성의 북쪽에 있다고 하여
북궐(北闕)이라고도 불리었다.
조선 태조 4년(1395)에 건립되
어 초기에 정궁으로 이용되었으나 임진왜
란 때 소실되었다.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조선 말기 고종 때
중건되어 잠시 궁궐로 이용되었다.
134 Ⅲ. 컴퓨터 그래픽 요소 제작